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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디자인

브랜드 위키 - 리바이스 Levi's

by 유익환 2022. 7. 19.

밤베르크 근교의 바이에른 지방 부텐하임에서 태어난 로엡(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847년 18세에 어머니, 누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한동안 이복 형제들이 일하는 직물상점에서 일했다. 이복형제들은 1845년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첫번째 결혼으로 낳은 아들들로서 그들보다 앞서 미국에 살고 있었다. 곧 그는 떠돌이 행상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면서 뉴욕 상점의 물건들을 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현관에서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1853년 그는 누이 패니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매부인 데이비드 스턴 그리고 매부의 이복형제 루이스와 함께 대형상점 리바이 스트라우스 & Co.를 설립했다. 그들은 금광업자, 농부, 선로 보수원, 벌목꾼들이 서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일상용품들을 판매했다. 단추, 실, 빗, 재봉용품, 칫솔, 천, 멜빵, 그리고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갈색 작업 바지 등이었다. 그 중에서 작업 바지는 거친 노동으로 쉽게 찢어지곤 했다. 일찍이 네바다에서 광산 노동자들을 위해 바지를 만들어왔던 버지니아시티 출신의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는 1872년 하중이 큰 부분에 마구처럼 구리 리벳을 박아 튼튼하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늘 돈에 쪼들려서 특허를 신청할 여유가 없었던 그는 때때로 그에게 원단을 납품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접촉했다. 1873년 데이비스와 스트라우스는 리벳에 관한 특허권을 분할해서 취득했고 그때부터 데이비스는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생산 책임자로 일했다. 구리 리벳과 어울리는 오렌지색 실과 1873년 뒷주머니에 박은 이중 곡선 역시 제이콥 데이비스의 아디어였다.

새로운 바지는 엄청난 매상을 올렸고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곧 공장을 설립해야만 했다. 일감을 맡아 집에서 작업하는 재봉사들만으로는 더 이상 납품 날짜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은 질긴 면 소재의 사용이었다. 원산지인 남프랑스의 도시 님의 이름을 따라 나중에 데님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소재였다. 인디고 블루 색상의 천은 중세부터 바지를 만드는 데 사용됐는데 이탈리아 항구 도시 제노바의 선원들이 즐겨 입었다. 16세기에, 영국에서, 나중에는 미국에서도 사용된 '진'이라는 용어는 'Genoese(제노바의)'에서 따온 것이다. 리바이 자신은 1960년에 가서야 비로소 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그때까지 바지는 공식적으로 리바이 작업 바지라고 불렸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제이콥 데이비스는 자신들의 바지 품질에 너무나 자신한 나머지 구매자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품질보증을 제공했다. 1886년부터 오른쪽 주머니 위에 가죽 태그(말 두마리가 그려져 있음)가 사용됐는데, 이는 말 두 마리가 바지를 찢으려고 애쓰지만 실패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 밑에 이런 글귀가 써 있다. "찢어지면 새 것으로 교환" 리바이의 진은 오늘날에도 같은 택을 부착한다. 1890년 바지는 우연히 '더블 X 501'이라는 브랜드 명을 갖게 됐고 (더블 X는 280그램의 무거운 면직물을 뜻한다), 1896년부터는 청바지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2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는 누이 패니의 아들들인 네 명의 조카 제이콥, 루이스, 에이브러햄, 지그문트 스턴이 물려받았다. 1928년 리바이 스트라우스 & Co.는 리바이스라는 상표명을 도입했고, 1936년 붉은 색의 작은 깃발이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에 부착됐다.

그 당시 이미 진은 노동자들만 입는 옷이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던 동부의 도시 거주자들도 입는 옷이 되어 있었다. 머나먼 유럽으로 휴가를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골로 이른바 주말목장을 찾아갔고, 그곳 농부들은 작업복으로 진을 입고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차츰 대도시에도 진을 유포시켰다. 모험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이런 추세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1941년 진은 '전쟁 귀중품'으로 선포되면서 군에만 공급되었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실용적인 작업복이자 레저복을 유럽으로도 가져왔다. 레저복으로서 갈색 작업자의 붐은 1950년대에 시작됐다.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랜도 같은 스타들이 해외 관객들에게 이를 알린 후부터, 특히 편협한 중산층과 대조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유행했던 반항의 1960년대에 작업바지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 한동안 상당한 저항에 부딪혔다. 미국에서는 1950년까지 학교에서 청바지 착용이 금지됐다. 심지어 의복을 착용할 권리에 관한 광고 캠페인 까지 생겨났는데 그것이 청소년들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음은 물론이었다.

2003년 12월 리바이 스트라우스 & Co.는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마지막 미국 공장의 문을 닫았다. 현재 'Made in USA' 리바이스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전적으로 저임금 국가에서만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