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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디자인

브랜드 위키 - 애플 Apple II

by 유익환 2022. 7. 13.

매킨토시의 성공은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왔다. 1984년 저널리스트 폴 브레이너드가 앨더스라는 회사를 창립해서 매킨토시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용자가 텍스트, 사진, 그래픽을 통합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지메이커는 1985년에 시장에 나왔으며 매킨토시를 인쇄기로 만들었다. 이제는 누구나 광고 전단이나 신문 혹은 책을 컴퓨터에서 바로 제작하고 인쇄기를 통해서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지 메이커는 도표계산이나 데이터 뱅크 프로그램이 IBM - PC에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매킨토시에 한 것이다. 이것은 매킨토시를 살 이유를 제공해주는 궁극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브레이너드는 또한 데스크톱 출판의 개념을 각인시켰다. 문자 그대로 '책상으로부터의 출판, 발행'을 뜻했다. 쿽익스프레스,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어도비 포토샵, 그리고 앨더스 프리핸드 등이 시장에 나온 이후 맥은 그래픽 전문가, 레이아웃 전문가, 광고 에이전시와 인쇄업자 등에게 이상적인 작업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돈벌이가 되는 사무시장을 파고들 수 없었다. 비싼 가겨과 매킨토시에 맞는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IBM 호환 퍼스널컴퓨터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사용자 편의성 역시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출시하자 차이가 없어졌다.

쿽 익스프레스 화면

1985년 애플 사는 추문에 휩싸였다. 다혈질이었으나 경영에는 능했던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를 쫓아내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스컬리는 제자리에 남았고, 잡스는 떠나야만 했다. 그 직후 잡스는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회사인 NeXT를 창립하고 나중에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출자했다. 픽사는 <스타워즈>를 제작한 영화 제작사 루카스 필름의 예전 컴퓨터 부문으로서 1995년 최초의 완전 컴퓨터 제작 애니메이션을 공급해 히트를 치게 된다. 또 한 명의 숨은 실력자로 마이크 마큘라가 있었다. 한때 자신의 돈으로 애플을 쳐부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보다 몇 달 전에 애플을 떠났다. 그가 담당했고, 기업의 주요 매출 상품이었던 애플 2가 당시 채 완성되지 않은 매킨토시 때문에 자꾸만 옆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 애플릐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언론에서는 컴퓨터 선구자들의 종말을 예고할 무렵, 간판스타 스티브 잡스가 1993년에 NeXT 하드웨어 부문을 캐논에, 1996년에는 소프트웨어 부문을 애플에 매각하고 1997년 7월 애플로 돌아왔다. 그의 카리스마적인 비호와 1997년 1억 5천만 달러를 애플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장 빌 게이츠 덕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기업은 다시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수년 동안 '그래픽 사용자 표시'에 대한 권한을 둘러싸고 스티브 잡스와 법정에서 싸워왔던 오랜 라이벌 빌 게이츠가 애플을 사들인 건 단순한 이유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미 법무부와 반독점 재판중에 있었는데 법무부는 이 회사를 분해하려고 했다. 만약 애플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IBM에 먹힌다면, 퍼스널컴퓨터 영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아닌 자체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유일하게 유명한 컴퓨터 제조업체다.

아이맥

복귀한 직후 잡스는 자신에게 아직도 세상을 놀라게 할 능력이 있으며, 위대한 혁신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였다. 1998년 5월 애플은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컴퓨터인 아이맥을 시장에 내놓았다. 미래주의적으로 보이는 아이맥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600만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처음으로 산업 디자이너인 조너선 이브가 컴퓨터를 디자인했다. 그 결과 투명한 올인원 케이스에 담긴 세련된 스타일의 컴퓨터가 되었으며, 결국 컴퓨터란 회색에, 모가 나고, 투박하다는 선입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